『주역(周易)』에는 ‘손상익하(損上益下)’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상층 사람들의 재산을 덜어서 아래층 사람들에게 보태주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실학자 성호 이익은 그것을 경제정책의 ‘대강’으로 삼았습니다. 다산은 그의 유명한 논문 「전론(田論)」에서 ‘손부익빈(損富益貧)’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습니다. 부자들의 재산을 덜어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보태주어야 한다는 뜻이었습니다. 다산은 또 「하일대주(夏日對酒)」라는 장편시를 지어 경제정책의 실패로 빈부의 격차만 늘어나 불공정, 불평등의 세상에 대한 무서운 비판을 가하기도 했습니다.
임금의 토지 소유는 부잣집 영감에 비유되네 영감님 밭 백마지기면 열 명의 아들 따로 산다면 마땅히 한 집에 열 마지기씩 주어 먹고 사는 일 동등하게 해줘야지 약삭빠른 놈 팔구십 마지기 삼켜버리면 못난 놈이야 곳간이 언제나 빈다네 약삭빠른 아들 비단옷 화려할 때 못난 아들 아파서 시달리겠지 영감님 그런 광경 눈으로 보면 불쌍해서 속마음 쓰리겠지만 그냥 맡겨두고 정리해주지 않은 탓으로 서쪽 동쪽 제멋대로 되어버렸네 고르게 태어난 골육이건만 자애로운 은혜 왜 그리 불공평한가 경제의 근본 강령 무너졌기에 만사가 따라서 막혀 안 통하네 한밤중에 책상을 치고 일어나 탄식하며 높은 하늘이나 쳐다보네 ……
| 后王有土田 譬如富家翁 翁有田百頃 十男各異宮 應須家十頃 飢飽使之同 黠男呑八九 癡男庫常空 黠男粲錦服 癡男苦尫癃 翁眼苟一盻 惻怛酸其衷 任之不整理 宛轉流西東 骨肉均所受 慈惠何不公 大綱旣隳圮 萬事窒不通 中夜拍案起 歎息瞻高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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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년 전의 실학자 다산의 탄식이 오늘 21세기 한국의 하늘에서 메아리치고 있습니다.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증세와 복지문제로 시끄럽다는 보도를 듣고 보면서, 마침내 올 것이 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백 마지기를 소유한 아버지가 열 명의 아들에게 열 마지기씩 공정하게 분배해주었다면, 왜 불만과 불평이 일어나 하늘 보고 탄식하는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요. 팔구십 마지기를 한 아들이 차지하고 보니 가지지 못한 아들들이 무엇으로 먹고살며, 어떻게 살아갈 방도가 있을 것이냐는 다산의 기본적 생각이 바로 오늘 이 나라의 경제정책의 근본적인 해결을 이끄는 생각이 아닐까요.
“증세 없이 복지를 이룩한다는 것은 국민을 속이는 일이다”라는 여당 대표의 발언이 집권 2년 차가 되어서야 나왔다는 것 자체가 안타까운 일입니다. 집권 2년을 허송하고 이제야 그런 사실을 알았다면 나라와 국민을 위해서 일하는 정당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요. ‘손상익하’, ‘손부익빈’이라는 대강(大綱)에 충실하지 못하고, 그게 무너진 마당에 어떤 방법으로 ‘증세 없는 복지’라는 꼼수 정책으로 혼란스러운 사태가 해결되겠는가요. 「하일대주」는 다산이 강진에서 귀양살던 1804년 여름에 지었던 시로 시대를 아파하고 세속에 분개하던 자신의 시 정신을 가장 명쾌하게 읊었던 내용인데, 200년이 훨씬 지난 오늘 우리나라의 경제정책을 수정할 길을 열어준 시였다고 여겨집니다. 이 나라 정부, 이제 그만 국민들을 속여먹지 말고 과감한 부자증세로 난맥상인 국민의 복지문제를 해결해주어야 합니다.
박석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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